우계이씨 9세 이만의 장모님이신 서원염씨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이만의 관직도 들어 있습니다.
서원염씨묘갈명(瑞原廉氏墓碣銘)
"우리 선조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 1348-1396)께서 어진 부인(賢配)이 있었으니 이 할머니의 성은 염씨로 서원염씨(瑞原廉氏)의 훌륭한 집안이었다. 염씨의 선조 염현(廉顯)과 염신약(廉信若) 두 분이 고려의 문종 명종때에 각각 정승(政丞)을 지냈다. 여러 대에 내려와 고조부 염순언(廉純彦)은 증직이 평장사(平章事)였다. 증조부 염승익(廉承益)은 벽상삼한삼중대광 도첨의중찬 상장군이고 시호는 충정공(忠靖公)이다. 할아버지 염세충(廉世忠)은 중현대부와 감문위대호군이다. 아버지 염제신(廉悌臣)은 충성수의동덕논도보리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도첨의문하시중 곡성부원군이고 시호는 충경공(忠敬公)이다. 충경공 염제신이 처음에 완산배씨(完山裵氏)에게 장가들었으나 자손없이 사망하였다. 두 번째로 추성동덕협찬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겸 예문관사 예천부원군이고 시호가 문탄공(文坦公)인 권한공(權漢功)의 따님(安東權氏)에게 장가들어 8남매(3남 5녀)를 두었다. 아들 삼형제가 모두 높은 벼슬을 지냈고, 딸 다섯이 모두 이름난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우리 염씨 할머니(1350-1376)께서는 딸 다섯 중에 셋째이시니 곧 공민왕비(愼妃廉氏, 넷째 따님)의 언니가 되신다. 염씨 할머니는 고려 충정왕 2년(1350년) 4월 8일에 태어나셨고, 성장하여 출가할 곳을 택한 끝에 우리 경주정씨(慶州鄭氏) 집안으로 들어오시어 순충분의좌명개국공신 보국숭록대부 판예조사 계림군(鷄林君) 증(贈) 우의정(右議政) 정희계(鄭熙啓), 호 양성헌(養性軒)의 아내가 되시었다. 그리고 (시아버지) 광록대부 문하시중 우문 예문 양관 대제학 월성군 증 순충적덕보조공신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시호 문충공 정휘(鄭暉)와 증 정경부인 광산김씨(光山金氏)의 큰 며느리가 되시었는데, (염씨 할머니는) 남편 정희계의 벼슬에 따라 곡성군부인(曲城君夫人)으로 봉하였다. 또 덕은 높고 어질었으나 수(壽)가 짧아 겨우 1남 1녀를 낳으시고, 우왕 2년(1376년) 4월 25일에 세상을 떠나시니, 이 때 나이 27세이셨으며, 산소는 남편산소 아래 손좌에 장사하였다(현재의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아들 정길상(鄭吉祥, 1367-1420)은 벼슬이 이조참판이고 증직은 이조판서였다. 따님은 인진사(引進使) 중추원부사(中樞院府事)를 지낸 이만(李蔓)에게 출가하니 우계이씨(羽溪李氏)이다. 판서공 정길상(判書公 鄭吉祥)이 원주원씨 참판 원빈(元賓)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5형제를 낳았는데, 1남 지인(之仁)은 후손이 없고, 2남 지의(之義)는 참판(參判), 3남 지례(之禮)는 판윤(判尹), 4남 지지(之智)는 교리(校理), 5남 지신(之信)은 세마(洗馬)다. 증손 이하는 매우 번창하여 다 기록하지 못한다(출처 : 경주정씨 양경공파세보 제1권 217-220쪽, 서원염씨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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